중고책의 밑줄 느낌.
아이를 위한 전집류의 책은 그 가격이 상당하다. 책값을 좀 줄여보려고 어린이 전집류를 몇번 중고책사이트에서 구입을 했다. 몇권을 제외하고는 책장 한 번 넘겨보지 않은 것 같은 느낌에 퍽 마음에 들었다. 사용한 흔적이 있는 책도 깨끗하게 봐서 세월에 따른 닳은 느낌이나 빛바램, 책냄새가 오히려 푸근하게 느껴졌다.
좋은 책을 싸게 살 수 있고, 출판업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자연을 위해서도 재활용하니 좋은 것 같고, 소중하게 읽었을 누군가 다른 사람의 느낌도 좋았다.
그래서, 단행본 책들도 더러 중고책을 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최근 구입한 중고책 중에 '중고생을 위한 김용옥선생의 철학강의'가 있다.
내게 중고로 책을 판 사람이 낙서와 밑줄긋기를 해 두어서 읽는데 방해가 많이 된다. 앞으로는 중고책 살때 밑줄그은책사절 이라고 꼭 단서를 붙여야겠다. 사람들마다 같은것을 보고도 느끼는 것이 다른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글의 문맥상 전혀 중요해 보이지 않는 곳에 꾹꾹 눌러 밑줄을 그어 놓으니 참 환장할 노릇이다. 밑줄 그은 부분이 자꾸 눈에 들어와서 글의 흐름을 놓치게 된다.
나 혼자 보는 책도 예전에 밑줄을 그어두거나 옆에 댓글을 남겨두거나 했을 때, 한참 지난 후에 그 책을 다시 읽으면 그동안 바뀐 나 자신이 예전의 나의 흔적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학교 공부하는 교재가 아니면 책에 낙서를 하지 않고 꼭 표시를 해 두어서 나중에 그 부분을 다시 생각해 보고 싶은 때에는 한쪽 옆에다 조그맣게 표시를 해 두는 정도로 그쳤다.
지금까지 한번도 남이 밑줄까지 그어 둔 책을 읽어 본 일이 없었나보다. 이번에 이 밑줄그어진 중고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끼게 되었다.
다음부터는 아무래도 중고책을 사기전에 밑줄이나 낙서는 없는지 확인을 해 봐야겠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은 남는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깊이 있는 메모가 남겨져 있거나,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의 밑줄이었다면 혹시 재미가 더 있었으려나.
아니면, 내가 그만큼 사람과의 소통을 못하는 꽉 막힌 사람이라 그런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