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소설일까/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로시니)

알리스슈바 2009. 6. 14. 23:01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를 보고싶어 구입한 '세비야의 이발사' DVD이다.

 

 

무대 연출이 일단 먼저 눈에 띄었다. 등장하는 배우들이 수시로 배경을 움직이고 쉽게 바꾸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잘 모르지만 멋진 연출임엔 틀림없다. 지나치게 심플해서 썰렁하지도 않고, 밝고 경쾌한 오페라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면서도 어수선하지 않도록 선을 지킨다.

 

아직 DVD로 본 오페라가 얼마 안되지만 이건 정말 관현악도 성악곡도 무대 분위기도 색다르다. 베르디나 푸치니와는 완전 딴판이다.

 

처음에는 기존에 듣던 음악과 너무도 달라 좀 어리둥절했는데,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에 가수들(여기선 배우들이라해야 더 맞겠다)의 연기도 코믹한 것이 아주 재미있다.

 

곡 자체가 너무도 호흡이 가빠서 도대체 이런 노래를 제대로 느낌이 나게 부를 수 있는 가수가 얼마나될까싶다. 이건 성악적 깊이보다 기교적인 부분이 커서 젊고 힘있을때나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DVD에서도 제대로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자연스러운 사람은 알마비바백작 뿐인듯하다. 마리아 바요는 나중에 보너스 DVD에서 보니 그렇게 우스꽝스럽지 않던데 어째 오페라 공연에서는 노래할때도 온몸을 비틀어 짜는듯하고 표정도 별로 극과 어울려보이지 않고 이상했다. 그냥 눈을 감고 들으면 노래는 들을만한데...

 

피가로역의 가수는 연극적인 부분은 자연스럽고 괜찮았는데, 노래는 자주 관현악과 안맞고 흥이 깨진다. 하지만 바르톨로와 바질리오에 비하면 80점은 줘야지. 바르톨로역의 가수는 너무 뚱뚱해서 그냥 그 자체로 우스꽝스러울뿐 노래는 아무런 감흥이 없고, 바질리오역의 라이몬디는 안타까울따름이다. 예전의 명성으로 그저 반가울 팬들도 있겠지만 계단을 20층정도 오른 후에 헉헉대면서 말할때의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 모든것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은 너무 멋지다. 바로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가 있기 때문이다. 젊고 한창 잘나가는 때여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연기도 자연스럽고 코믹한 분위기를 잘 살리고 노래도 다른 사람들처럼 오케스트라에 끌려가는 느낌이 아니라 분위기를 주도하는 느낌으로 멋지게 잘 부른다. 지금껏 플로레즈처럼 가벼운 목소리의 테너는 별로 들어보지 않아서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이런 가벼운 느낌의 오페라에 어울리는 목소리인것 같다.

2막 끝부분 다른 전곡반에서 거의 생략되는 'Cessa di piu resistere' 를 부를때 정말 깜짝 놀랐다. 이게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인건지. 그렇게 기복이 심하고 길기도 한 노래를 하더니 곡의 피날레 부분은 그 높은 음을 10초를 유지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저게 사라장의 바이올린에서나 나올법한 소리지 사람의 몸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올까 싶었다.

 

가지고 있는 칼라스 CD에서 그 부분을 들어보려고 봤더니 생략되고 없다. 아쉽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음악은 칼라스 음반이 더 좋다.

그런데 칼라스가 무대에서 로지나역을 했다면 어울렸을까. 아닐것 같다.

 

로시니의 이 오페라를 많은 사람들이 멋지다고 하는데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상하게 한번 DVD를 본 후 바로 다음날부터 서곡부터 시작해서 장면 장면마다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며 음악이 그치지 않는다. 연달아 몇일동안 계속 다시 보게되고, 음악을 듣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