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3/13/0200000000AKR20160313016000005.HTML?input=1179m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오래 기다려온 만남의 열기는 뜨거웠다.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과 함께 오페라계 최고의 스타로 꼽히는 러시아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그의 첫 내한 공연이 열린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분위기는 아이돌 가수의 공연장을 방불케 했다.
드디어 네트렙코를 한국 무대에서 만난다는 설렘으로 잔뜩 흥분한 객석의 분위기는 자데르 비냐미니가 지휘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격정적인 '운명의 힘' 서곡으로 더욱 고조됐다. 마침내 네트렙코가 무대에 등장하자 콘서트홀을 합창석까지 가득 메운 청중은 폭포 같은 박수로 맞이했다.

첫 곡은 칠레아의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중 '저는 창조주의 미천한 종일 뿐(Io son l'umile ancella)'으로, 이날 콘서트가 네트렙코의 가벼운 레제로-리릭 소프라노 레퍼토리가 아니라 무겁고 드라마틱한 소프라노 배역들로 구성된다는 신호탄이었다.
최근 몇 년간 훨씬 깊어지고 풍성해진 소리로 착실하게 레퍼토리를 확장해온 네트렙코지만, 아드리아나 배역을 노래한 과거와 현재의 다른 소프라노들과 비교할 때 이 아리아는 완벽하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네트렙코 스스로 자신의 레퍼토리 중 현재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1막 아리아 '밤은 고요히 잠들어(Tacea la notte)'에서도 레가토의 유연성, 빠른 패시지(악구) 테크닉의 정확성, 표현의 조탁(彫琢) 등이 모두 조금씩은 부족했다.
그런데도 네트렙코를 만난 기쁨에 취한 청중은 콘서트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같은 강도로 감격에 찬 갈채를 퍼부었다. 매 곡 가창의 예술적 완성도에 따라 청중이 차별화된 반응을 보여준다면 무대 위의 성악가에게도 적절한 자극과 도움이 될 텐데, 이 점은 안타까웠다.

네트렙코와 함께 내한한 알제리 태생의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 역시 스핀토 또는 드라마틱 테너의 역할들을 노래했다. 칠레아의 '아를의 여인' 중 '페데리코의 탄식'을 첫 곡으로 부른 그 역시 우레 같은 박수세례를 받았다.
이탈리아에서 말년의 프랑코 코렐리에게 배웠다는 그는 이번 공연에서 스승의 장기였던 '일 트로바토레'의 만리코, '투란도트'의 칼라프, 그리고 '안드레아 셰니에'의 셰니에 역을 안정된 발성과 드라마틱한 표현력으로 소화했다.
그러나 레오노라를 향한 만리코의 감동적인 아리아 '아, 그래요(Ah! si ben mio)'에서는 감성의 깊이가 아쉬웠고, 그에 이어진 '타오르는 불길을 보라(Di quella pira)'에서는 마무리 부분에 실수가 있었다.
최근에 결혼한 이 네트렙코 부부에게 '오텔로'의 사랑의 이중창은 극의 상황과 자신들의 현실을 비교하더라도 특별히 잘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그러나 오케스트라가 남긴 도취의 여운을 오히려 두 가수는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두 사람 다 훌륭한 가창을 보이면서도, 청중에게 완벽한 몰입과 도취를 선사하는 '화룡점정'이 없었다.
2부 첫 곡이 네트렙코와 에이바조프가 함께 부르는 쿠르티스의 가곡 '나를 잊지 말아요(Non ti scordar di me)'였던 것은 의외였다.
1, 2부를 진지하게 오페라 아리아와 듀엣으로 채우고 앙코르곡으로 불렀더라면 적절했을 곡이었다. 더구나 애절하기 그지없는 이 가사를 노래하며 무대 위에서 즐겁게 춤을 추는 태도는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 그다음 곡이 '마담 버터플라이'의 '어떤 갠 날(Un bel di vedremo)'이었기 때문에, 무거운 분위기로의 전환이 너무 갑작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후반의 아리아 세 곡, '베르테르'의 '왜 나를 깨우는가 봄바람이여(Pourquoi me reveiller)', '루살카'의 '달에게(O Mesicku)', '안드레아 셰니에'의 '5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Come un bel di di maggio)'은 이날 콘서트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단락이었다.
에이바조프에게는 셰니에의 아리아가, 네트렙코에게는 루살카의 아리아가 가장 어울렸고, 무대의 끝에서 끝까지 돌아다니며 왕자를 찾는 네트렙코의 애절한 연기는 노래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들었다.
앙코르곡으로 네트렙코는 에머리히 칼만의 독일어 오페레타 '차르다시의 여왕' 중 쇼걸인 여주인공 실바가 쇼 무대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헝가리풍의 '하이아(Heia·고향의 노래)'를 열정적으로 불러 청중의 열광을 끌어냈다.
네트렙코의 '맥베스' 아리아가 빠진 것이 아쉬웠지만, 이번 공연은 그의 탁월한 무대 장악력과 청중 친화력, 그리고 드넓은 연주공간을 압도하는 성량을 한국 청중에게 확인시켜 준 무대였다.
rosina@chol.com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3/13 10:2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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