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계속 새로운 오페라들을 하나씩 접하고 있지만, 장미의 기사 이후 오랫만에 첫눈에 반한 오페라다.
아니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시몬 보카네그라에 반한 것인지, 블라디미르 체르노프에 반한 것인지.
도밍고가 보카네그라 역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에 아주 한참이 지났고, 지난달에는 코엑스에서 메트 라이브 상영도 한 모양인데, 여태 보카네그라를 한번 볼 시간이 없다가 오늘 드디어 메트 플레이어로 체르노프의 보카네그라를 보았다. 메트에 보카네그라가 두개 올라와 있는데, 둘 다 DVD 발매도 되었고, 평도 모두 좋다. 밀른스냐 체르노프냐.. 캬캬... 당근 체르노프 아니겠나... 별 매력없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며칠전 본 <운명의힘>에서 반쯤 홀라당 반해버렸는데...
대충 스토리만 한번 훑어보고 95년 메트 공연 영상을 보았다. 이 오페라는 프롤로그의 스토리가 휘리릭 지나가므로, 미리 스토리를 한번 정리해서 훑어본 후에 공연을 보는 것이 좋다.
로버트 로이드의 노래 스타일은 개인적으로 조금 안 좋아 하지만 일단 넘어가고.. 키리 테 카나와, 플라시도 도밍고 둘은 잘 받쳐준다. 뭐니뭐니 해도 주인공은 시몬이니깐 이 표현이 맞겠지..ㅋ.. 관객이 너무 도밍고에 열광하는 티가 팍팍 나는데, 이게 도밍고의 보카네그라 데뷔였다나 뭐라나, 흠.
체르노프의 시몬, 허걱, 멋지다. 같은 러시아 남자인데, 흐보로스토프스키랑은 또 느낌이 다르다. 차분하고 지적이면서도 이탈리아 오페라에 잘 어울리는 것은 테너가 아니라 바리톤이어서일까.
잘나가는 해상왕 시몬, 귀족 피에스코의 딸 마리아를 사랑하는데 그 아버지 반대로 헤어지고 그녀가 낳은 딸을 키우고 있었다. 피에스코는 자신의 딸을 감금해 뒀으나 죽어버렸고, 시몬에게 그녀의 딸, 즉 외손녀를 내 놓으면 용서하겠다 하는데, 늙은 보모에게 딸을 맡겨놓고 바다에 나갔다 온 사이 보모가 죽고 딸을 잃어버렸단다. 정치적 상황에 휘말려 여차저차 총독으로 추대된다.
그리고 25년 후...
안드레아라는 가명으로 신분을 숨긴 피에스코는 고아 소녀를 데려다 키웠는데,아멜리아란 이름의 그녀가 사실은 시몬의 딸. 그녀와 사랑하는 사이인 남자 가브리엘레(유일한 테너 되겠다). 총독 시몬과 대면한 아멜리아, 둘은 서로를 알게되어 극적 부녀상봉.
(... 쓰다보니 스토리가 생각보다 길다 ㅋㅋ. 파올로 얘기를 빼면 시몬의 죽음을 설명할 길이 없네 ...)
뭐 암튼 그 파올로란 놈에게 독살되는 시몬. 정치적 반대파인 가브리엘레를 딸의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아멜리아가 사실은 외손녀임을 알게된 피에스코와 시몬의 죽음을 앞둔 화해. 그리고 ...
스토리가 너무 많긴 하지만 한번만 이해하고 보면 별것 아니다. 아니 긴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그리 정신없지 않다는 것이 이 오페라의 저력이겠지. 베르디가 이 오페라의 초연에 실패한 후 25년 후 개정 작업을 할때 보이토라는 대본가와 함께 했다고 하는데, 그가 후에 오텔로의 대본 작업도 했다고 한다. 복잡한 스토리 임에도 그걸 정제된 몇 장면으로도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것은 그의 힘이 아닐까.
오텔로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 했었다. 말로 하기에도 한참 걸리는 이런 스토리를 어떻게 단순화시킨 몇 장면으로 저렇게 명쾌하게 보여주는 것일까 하고...
오네긴 후로 바리톤이 주인공인 오페라를 두번째로 보는건가... 아니 햄릿이 있긴 하구나..
시몬 보카네그라는 음악적으로도 좀 다르다. 감각적이거나 통속적인 느낌이 없고 담백하고 깔끔하다. 좀 무겁지만 오텔로처럼 살을 에이는 아픔도 아니고, 음... 암튼 좀 더 음미해 봐야겠다.
근데, 작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에 안간것이 이렇게 후회가 되네.. 그 멋진 공연 포스터에 반해서 무작적 가보고 싶더라니..
1953년생. 바리톤은 잘 관리하면 이 나이에도 멋진 노래를 들려주시잖아...
46년생 카레라스는 이제 완전 할아버진데.. 비슷한 때에 호세 카레라스 공연이 있어 좀 부담이 되었지..
(2010.06.08)
아마도 당연히 바리톤이라면 시몬에 도전하고 싶겠지. 그동안 세릴 밀른스를 여러곳에서 접했지만 그 좀 얍삽하게 생긴 얼굴땜에 매력적인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리 끌리지 않았는데, 84년의 시몬 보카네그라를 보니 완전 멋지다. 남자다운 목소리는 역시 바리톤. ㅎㅎ
84년 메트 실황에서는 레바인의 오케스트라와 밀른스의 보카네그라가 참 좋다. 95년 실황보다 10년 더 지난 것이지만 레바인의 지휘는 더 박력있어 자칫 너무 무거울 수 있는 이 오페라에 생기를 주는 것 같아 좋고, 체르노프와는 다른 느낌의 밀른스도 참 좋다. 더 카리스마있는 듯 하면서도 실감나는 부정이 묻어난다. 그런데 아멜리아역의 토모와-신토우는 노래는 잘 하는지 몰라도 좀 이 역에 안어울리는 분위기다. 아도르노도 노래는 잘 하는데 매력은 없고, 특히 피에스코역의 플리시카는 일단 좋아하지를 않고..(근데 마지막 두 노인네 화해 장면에서 노래는 잘 하네, 연기는 뭐 그렇지만)
다시 체르노프의 보카네그라를 보니 밀른스와는 목소리나 노래 스타일도 다르고 연기에서 풍기는 느낌도 참 다르지만 둘 다 참 멋진 보카네그라다. 체르노프의 눈빛에서 자꾸만 킨리사이드가 느껴지는 것은 어쩐일인지.. 살짝 비슷한 느낌도 있네..
좀 더 성숙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95년의 레바인은 84년의 박력있는 소리와는 좀 다르다. 키리 테 카나와의 아멜리아는 참 잘 어울리는 매치인것 같다. 그녀 연기도 훨씬 아멜리아스럽고, 노래도 그렇고. 도밍고의 아도르노도 다시 보니 더 좋다.
이제 또 누구의 보카네그라에 빠져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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