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소설일까/오페라

운명의 힘 - 1996 메트

알리스슈바 2010. 5. 26. 11:54

메트 플레이어에 내가 좋아하는 오페라 <운명의 힘>이 새로 올라와서 반갑다.

1996년 실황인데, 도밍고와 스위트, 그리고 체르노프의 이름이 보여 다른 것 제쳐두고 보았다. 지휘는 물론 레바인 선생.

84년 프라이스의 실황은 보고 또 봐서 거의 외울 지경인데, 다른 프로덕션으로 보니 또다른 재미가 있다.

은퇴기의 프라이스가 비주얼로는 레오노라에 좀 안어울린다 생각했는데, 웬걸~~ 이 공연의 레오노라와 알바로는 더하다 ㅠㅠ. 못난이 뚱보커플 ㅋㅋㅋ. 도밍고의 얼굴이 못생긴건 아니지만 이 공연에선 뚱뚱하고 늙은 아저씨... 하지만 윤기 흐르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10년이 지났는데, 84년 공연에서 보이던 합창단이나 조연급 성악가들의 얼굴이 많이 보인다. 그들을 보는 것도 재밌다.

그리고, 최근 공연에서 자주보는 자그마한 아주머니 합창단원이 96년의 이 공연에 등장한다. 이거 완전 숨은 그림찾기 하는 것처럼 재밌다.

 

수도원 장면은 언제봐도 좋다. 수도사들의 합창 장면은 어쩜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걸까. 난 크리스찬도 아닌데, 그런 경건하고 슬프게도 아름다운 장면에선 신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나 성당에서 저런 기분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수도원장역이 로베르토 스칸디우치(?) 인가... 아이구, 이 멋진 베이스 목소리를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생각이 안나네...

(ㅋㅋ 찾아보니 얼마전 봤던 그루베로바의 노르마에서 오베르조역을 한 베이스다)

 

솔직히 레오노라의 노래 몇소절에 좀 실망스러워서 그만 두고 싶었지만, 체르노프의 매력적인 목소리 때문에 끝까지 본다.

블라디미르 체르노프. CD로 목소리는 몇번 들었지만, 실황으로는 처음인데, 목소리만큼이나 이렇게 멋진 외모라니 *_*

체르노프를 너무도 좋아하는 어느 블로거가 생각난다.

 

이 오페라는 볼 때마다 너무 좋은 점과 싫은 점이 대비된다. 가혹한 운명에 떠밀려 수도원으로 들어간 레오노라와 전쟁터에서 죽기를 바라며 군대에 들어간 알바로의 모습이 대비되는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프레치오실라라고 하는 캐릭터는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싫다. 술집여자도 아닌 것이, 전쟁 선전대도 아닌 것이, 그냥 자유로운 집시녀도 아닌것 같고,, 아니 그 모든것을 뒤섞어 놓은 개성없는 캐릭터라고 할까..

봐도 봐도 그녀만큼은 참 보기 싫다. 게다가 이상하게 보는 사람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란 말이야...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아리아 'pace, pace..' 그럭저럭 잘 부르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감동을 주지는 못하는 그녀. 2% 부족.

 

이 오페라가 드물게 테너가 완전한 주인공인 오페라이긴 한데, 역시 도밍고는 이름값 한다. 사실 메트에 주인공으로 서는 대부분의 성악가들이 그 실력이 다들 대단하겠지만, 감동을 주는 그 무엇인가를 가졌는가 아닌가 하는 점은 스킬로 따지자면 어찌보면 아주 작은 한 부분일 수 있겠지만, 그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라서 말이야... 도밍고 같은 대가도 어떤 부분에선 실수도 있고, 그냥 평범한 부분도 있지만, 결정적인 곳에서 기대하는 그 짜릿한 맛을 느끼게 해 준다는 말씀이지..  아,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도밍고 팬이 되었나 모르겠네 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