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소설일까/CD·DVD 리뷰

바그너 <반지> - 주빈 메타, 발렌시아 2007.

알리스슈바 2012. 6. 13. 22:06

일단 <반지>에 맛을 들이고보니 1940~50년대부터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녹음과 영상물로 반지 세트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게다가 웬만한 것들은 유투브에서 미리 대충 분위기를 맛 볼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발렌시아 반지. 유투브에서 잠깐씩 스쳐지나며 '웃기는 연출에 주빈 메타...' 그저 이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며칠전 <신들의 황혼> 전체를 하나의 클립으로 올려둔 동영상을 봤는데, 이게 웃기는 정도를 넘는 뿜게 만드는 연출인데 묘하게 자꾸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데다가, 중요한건 음악이 예상외로 매우 훌륭하다는 점이다. 웃기는 브륀힐데, 웃기는 지크프리트, 웃기는 군터, 웃기는 구트루네, 그리고 웃기는 하겐. 그런데 노래는 모.두.가. 훌륭하다. 게다가 오케스트라 연주가 어,어,어, 아주 좋다^^

 

그래서, 발렌시아 반지 세트를 이렇게...  장만? 아니고 빌려서 ㅎㅎ

        

 

일일이 적기가 귀찮아서 ... 세부정보도 사진으로 ㅋㅋㅋ

 

 

 

 

언제나처럼 <라인의 황금>은 선뜻 손이 가지 않으니 발퀴레부터 잡았는데, <신들의 황혼>을 유투브로 보면서 기대가 컸나? 생각보다 조금 밍밍하다. 그런데, <라인의 황금>을 보면서 또한번 예상밖의 결과가... 이렇게 지루할 틈 없는 재미있고 신나는 <라인의 황금>이 있었던가 싶다. 무대위의 소품처럼 사용된(?)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대단하다. 그들에게 감사를~

 

부클릿에 따르면 Recorded live at the Palau de les Arts Reina Sofia, Valencia, April/May 2007 이다.  스페인 역사의 'Reina Sofia'가 어떤 여왕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2005년 문을 연 오페라하우스와 문화센터라고 한다. 2006년 가을에 '피델리오'로 첫 오페라 공연을 올렸다고 하니, 2007년 봄의 이 반지 공연은 아마도 이 오페라하우스 개관때부터 준비한 공들인 작품이리라 짐작된다.

 

File:El Palau de les Arts Reina Sofía, Valencia - Jan 2007.jpg

( Palau de les Arts Reina Sofia  출처: 위키피디아)

 

(2012. 6. 21)

네 편을 모두 본 후 간단 느낌.

이 연출이 가장 잘 어울리고 재미있는 곳은 <라인의 황금>이다. 반지 네 개의 이야기에서 가장 지루한 부분이 <라인의 황금>이었는데, 이제 더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처음엔 좀 헛웃음 나오는 엉성한 세팅이다 싶고, 세명의 라인 처녀들이 조그만 수족관에서 노래하랴 물속에 들락거리랴 '저러다 물먹으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되고 그랬는데, 알베리히가 수족관 아래쪽 마개를 열어 물을 빼버리고 황금(알?)을 거둬가는 장면을 시작으로 그냥 이 연출에 자연스레 빨려들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었다.

그래픽으로 처리되는 뒷 배경이 그냥 고정된 벽이 아니라 칸칸이 움직일 수 있는 틀로 되어있어서 이를 적절히 움직여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도 좋고, 그래픽 화면도 상황에 적절하고 세련된 느낌이라 좋다. 지하세계의  난쟁이들이 황금을 만들어내는 장면도 재미있고, 높이 오르내리는 기계장치로 신들의 세계를 표현하고, 거인들을 표현한 기계장치도 잘 어울린다. 게다가 프로와 도너가 젊고 늘씬한 핸섬가이들이란 점~ ㅎㅎㅎ  뭐 프리카와 프라이아도 예쁘지만 내 알 바 아니고 ㅋ

 

일관성이 어느정도 유지되면서 진행되는데도 <발퀴레>는 기대이하 실망스럽다. 발퀴레 언니들의 촌발 날리는 패션에, <라인의 황금>에선 신들을 표현하는데 적절해 보였던 그 기계장치가 여덟명이나 되는 발퀴레 언니들과 뒤엉키고 나중에 브륀힐데랑 지클린데까지 합세하니 이건 뭐... 관현악도 브륀힐데 뒷태마냥 답답하게 느껴지고... 보탄은 좋더라, 많이 인간적인 느낌.

 

지크프리트역의 랜스 리안(Lance Ryan). 목소리가 너무 가늘고 힘이 없어보여서 좀 적응하기 힘든데, 연기는 참 지크프리트스럽다. 눈화장 진하게 해 놓고 너무 자주 지휘자쪽으로 곁눈질을 하는 것이 살짝 아쉬웠음. 미메가 좀 약해서 <지크프리트> 전체가 좀 심심하게 느껴졌지만, 비주얼은 진짜 피오나가 울고 갈 형편이지만 브륀힐데가 막판 뒤집기 한판으로 분위기 반전. 그래도 난 미메가 좋은데, 아쉽다.

 

유투브 영상으로 서막과 1막정도는 봤지만, 역시 이번 반지의 갑은 <신들의 황혼>이다. 마티 살미넨은 <라인의 황금>에서 파졸트로, <발퀴레>에서 훈딩으로, 여기선 하겐으로, 무려 세 편에 출연하는데 역시 이름값 한다. 목소리, 노래, 딕션, 연기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무엇보다 메타와 발렌시아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정말 훌륭하다. 죽기 직전까지 시종일관 이해 불가능한 행동의 연속인 지크프리트의 캐릭터를 적절히 표현해주는 랜스 리안. 구트루네 언니도 훌륭하고, 모두 좋다. 기대를 너무 했나? 브륀힐데의 희생 장면이 좀 아쉬웠다.

 

<반지>를 보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점점 <신들의 황혼>이 좋아진다. <지크프리트>로 시작을 한 만큼 초반엔 비교적 스토리가 복잡하지 않은 <지크프리트>가 좋았는데, 바렌보임의 <발퀴레>에서 2막 서곡의 짜릿함을 맛 본 후로 <발퀴레>가 재미있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 이제는 <신들의 황혼>이 가장 재미있다. 아! 그러고보니 이번 발렌시아 실황에서 합창이 정말 멋있었다.

룰룰루~ 아직도 더 볼 반지가 많다는거~ 고등학교 졸업 후로 다시 볼 일 없던 독일어, 그래도 대본 보는데 도움이 된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