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투란도트의 감동이 아직 생생한데, 이번엔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국립오페라단의 카르멘 공연이다. 11월5일 목요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보았다. 몇주전 목요일표를 금요일것으로 바꿔달라는 예매처의 전화가 있었다. 내 스케줄도 있고, 또 메인 성악가들의 공연(특히 올렉 비더만)을 보고싶어 2층 자리를 주겠다는것을 사양하고 그냥 목요일 공연을 보러갔다. 역시나 예상대로 단체로 배포된만큼 평소와 다르게 엄청 어수선하고 시끌벅적했다. 봄에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공연 볼때, 그 학교 관계자들이 대부분의 관객이라 엄청 시끄럽고 어수선했던 기억에 웬만하면 그런 단체관람(?) 공연은 피하고싶었는데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목요일밖에 안되니...
오늘 공연의 주역 : 아군다 쿨라에바(Agunda Kulaeva) 카르멘. 올렉 비더만(Oleg Videman) 돈 호세.
베로니카 지오에바(Veronika Dzhioeva) 미카엘라. 로만 부르덴코(Roman Burdenko) 에스카미요.
애초에 표가 너무 비싸 3층에서도 바깥쪽 자리라 무대 오른쪽이 잘 안보이고 소리가 좀 뒤섞이는 느낌이 들었는데, 오른쪽으로 앉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속닥거리는 바람에 좀 집중하기 힘들었다. 가운데쪽으로 빈자리가 많았지만 웬만하면 내자리에 있고싶었는데, 이 속닥이는 사람들 때문에 참기 힘들어 인터미션때 가까운 빈자리로 옮겼다. 참, 이번 공연은 세번의 인터미션이 있었다. 막이 바뀔때마다 15분씩 인터미션이 있으니 전체 공연시간 길어지고 좀 맥빠지는 느낌도 있었다. 카르멘이 그리 긴 공연도 아닌데 2막후에 한번 쉬면 될것을...
카르멘도 호세도 좋았지만, 난 미카엘라가 아주 맘에 들었다. 지나치게 유약하고 순종적으로 그려진 미카엘라가 아니었다. 그냥 참한 아가씨라고나 할까. 특히, 노래를 참 잘 부르고 목소리도 훌륭했다. 전에 몰랐던 미카엘라의 매력을 알게 해 주었다. 찾아보니 지난 6월의 갈라콘서트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사람이 바로 그녀였나보다. 베로니카 지오에바. 멀리서 보니 좀 동양적으로 생긴것같아서 내심 우리나라 성악가인가하고 기대했는데 마지막에 자막을 보니 아니었다.
에스카미요는 그저 그랬다. 너무 힘이 들어갔고 뚝뚝 끊어지는것이 별 멋이 없다.
오케스트라 연주와 지휘가 좋았던걸까, 카르멘의 간주곡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새삼 놀랐다. 초반엔 별 특징없는 밋밋한 느낌이었는데 2막, 3막 지날수록 담백하고 깔끔한 느낌의 연주가 좋아졌다.
호세의 꽃노래를 정말 좋아하는데, 올렉 비더만의 꽃노래는 지난 갈라콘서트 동영상에서도 느꼈지만 좀 색다르고 내취향은 아니었다. 취향을 떠나 잘 부른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4막의 이중창에서는 정말 멋있었다. 심장이 터질듯 팽팽한 긴장감, 그 처절한 매달림에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빠져들었다.
카르멘역의 아군다 쿨라에바. 멀리서 보기엔 늘씬하고 목소리도 탄력있고 젊은 느낌. 하바네라는 좀 힘없이 늘어져서 실망스러웠는데 점점 목소리가 자리를 잡는 느낌이었다.
2막의 시작부에 보통은 화려한 차림의 여성이 플라멩코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매끈한 멋진 몸매의 젊은 남성들의 춤이 나왔다. 오웃~ 이렇게 즐거울수가^^ 남자 무용수의 단단하고 매끈한 몸매는 정말 ~ 꺄~ 춤은 또 얼마나 힘이 넘치면서도 부드러운지~
근데, 그런 춤을 뭐라고 부르는걸까. 그것도 플라멩코인가? 암튼 엄청 섹시하고 멋지다 ㅋㅋ.
알렉세이 스테파뉵이 유럽에서 알려진 연출가인지 이 오페라를 홍보하는 과정에 자주 언급된 이름이었다. 호세는 결국 세번이나 바지자락에 감추어 두었던 칼을 빼들었고, 2막 끝부분 주니가를 찌른 후 카르멘의 나쁜 친구들(^^)은 결국 그를 죽여버린다. 오웃~ 깜짝 놀랐다. 무대위에서 직접 죽여버리는 장면을 연출하다니. 대부분은 죽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끝을 맺더만, 이건 너무 직설적이다. 하급 군인들과 담배공장 언니들의 노닥거리는 장면들도 어찌나 끈적하던지, 특히 2막에서 다시 만난 카르멘과 호세는 완전 얼굴 뜨거울 만큼 노골적인 장면 연출이었다. 자녀와 함께 온 가족도 더러 보였는데, 완전 19금 수준.
대부분의 오페라가 후반부의 극적인 마무리로 초반의 미지근, 어수선, 엉성함을 잊게 만들지만, 카르멘의 4막은 호세와 카르멘의 이중창이 거의 전부이고 또 이 이중창이 얼마나 멋진지.. 내겐 누가뭐래도 카레라스의 호세가 최고지만 무대위에서 살아 펄떡이는 이 멋진 장면의 감동은 정말 대단하다. 오직 오페라 공연을 보기위해 지구 반대편 유럽의 극장에 간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겠다.
(나중을 위해 포스터를 복사)
---------------------------------------------------------------------------------------------------------
'음악은 소설일까 > 오페라 공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0 Met HD Live - 투란도트 (0) | 2010.01.14 |
---|---|
운명의 힘 - 세종문화회관(2009.11.19) 후기 (0) | 2009.11.23 |
나비 부인 - 세종문화회관(2009.03) 뒤늦게 후기 (0) | 2009.10.19 |
투란도트 - 나폴리 산카를로 국립극장 초청 공연 (0) | 2009.10.19 |
베르디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 in 세종 (0) | 2009.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