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소설일까/오페라 공연

운명의 힘 - 세종문화회관(2009.11.19) 후기

알리스슈바 2009. 11. 23. 10:43

8월에 예매한 오페라인데, 드디어 보았다. 세종문화회관은 오페라 공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닌것같다. 소리가 샌다.

 

이미 <운명의 힘>에 푹 빠져버린 나로선 더욱 기다려지는 공연이었다. 무대 연출도 깔끔하고 주역들도 좋았다. 역시 고성현은 명성이 아깝지 않았다. 가끔 원래 악보에는 없었을법한 튀는 고음이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주어진 음표를 내는데 급급한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여유가 가득한 느낌이었다. 알바로역의 김남두,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노래도 정말 잘하고. 너무 부드럽고 아름다운 느낌이라 오히려 극적인 느낌이 좀 떨어지는 것이 0.5% 아쉽다고 해야겠다. 레오노라역의 김인혜는 그냥 평범했다. 우리나라에서 드라마틱 소프라노가 나오기 힘든다고 하던데 파워나 카리스마를 느끼기는 힘들었다. 많이 아쉬운것은 구아르디노역이었다. 좀 마른 느낌의 성악가였는데, 안정적이고 풍부한 저음을 내줘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고, 연기도 가벼워보이고 전혀 수도원장 느낌이 아니었다.

 

2막 후반부 수도원 장면. 사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경건하고 아름다운 부분인데, 정말 이 부분은 최악이었다.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다는 그 대단한 파이프오르간이 그런 형편없는 소리를 낼 줄이야. 늦봄에 파이프오르간 연주 공연을 예매했다가 시간이 안되어서 취소한적이 있었는데, 난 파이프오르간이 중후하고 경건한 느낌의 소리를 낼 것으로 생각했는데, 좀 어이없었다. 오르간의 소리도 문제지만 그 오르간 연주자는 마치 초등2학년의 피아노 연주를 생각나게 했다. 반면 바이올린 연주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아주 극과극이었다.

 

3막의 두 남자. 알바로도 카를로도 모두 멋져서 흠뻑 빠져들었는데, 아쉽게도 너무 많이 생략되어 버렸다. 알바로가 총상에서 회복된 후 드디어 기다렸던 카를로는 정체를 드러내며 결투 신청을 하는데, 이 재미있는 장면이 완전히 없었다. 이건 초콜릿 상자를 열었더니 절반이 비어있는 느낌이랄까. 두 남자에 기대하며 이 공연을 기다렸는데, 전혀 예상못한 장면 생략에 너무 아쉬웠다. 너죽고 나죽자고 덤비는 두 남자의 결투장면은 진지한 두 남자의 연기와 노래 가사를 함께 따라가면 진짜 재미있는데...

 

4막 레오노라의 죽음 장면에서 알바로의 마지막 한마디 'Morta!'  아주 멋있었다. 그녀의 죽음과 자신의 비극적 처지를 너무도 잘 나타내주는 자연스럽고 극적인 마지막이었다. 브라보 김남두~

 

이 공연의 최악의 참가자!! 바로 일부 관객님들...

 

외국인 성악가가 참여하지도 않고, 외국인 지휘자가 선것도 아닌 순수 국내 오페라.

외국에 나가 직접 오페라 공연을 볼 기회가 없는 나로서 과거 유명한 음반이나 DVD로 본 것과 공연장에서의 것을 단순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쨌든 좀 매끄럽지 못한 진행과 주역들의 1% 부족한 느낌은 실황의 생생함으로 커버가 가능하다.

문제는 관객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주역급 성악가들은 어딘가 대학 성악과의 교수들이다. 그 제자들인것처럼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과장된 환호를 보내는 것도 이젠 그나마 참을만하다. 또, 가족이든 친지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무대위에 섰는데 특별히 더 환호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데 참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무대위의 노래든 무대아래 오케스트라 연주든 끝나기도 전에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쳐댄다는 것이다. 마지막 음표는 커녕 아예 클라이막스에 오르는가 싶으면 그냥 분위기 깨면서 연주의 끝을 망쳐버리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내가 지휘자라면 아주 성질나서 미칠것 같다.

이번 공연에서는 2층 왼쪽의 한 남성 관객이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한 포인트마다 연주가 끝나기전에 징그러운 브라보를 외쳐대는 바람에 도무지 공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이 그렇게 시작해버리면 대부분 관객들도 그에 맞춰 때이른 박수를 보내게 되니 아직 한참이나 남은 연주는 박수소리에 묻혀서 흐지부지 들리지도 않고 사그러든다.

오페라 공연 관람이 한두번이 아닌듯한 자신 만만한 그의 '브라보'. 그러나 정말 쪽팔리는 '브라보'였다. 무대위 노래하던 성악가는 그의 브라보가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