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메트 라이브의 코엑스 메가박스 상영을 현대카드가 후원한다는 사실은 지난달 <투란토트>를 보면서 알게되었다. 뜻밖에 시사회 초대를 해 줘서 후배와 함께 오늘 봤는데, 매달 첫 상영은 후원사의 이벤트 시사회로 진행이 되고 있었나보다.
지난달 평일 저녁시간에 갔을때는 중간 좋은 자리쪽만 1/3정도 객석이 찼었는데, 주말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시사회이니 자리가 꽉 찼다. 고맙게도 전 객석 중에도 가장 좋은 자리다. 마치 화면을 나 혼자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얼마전 DVD도 보고 음악도 좀 듣고 했지만 푸치니나 베르디에 비해 음악도 다르고, 극의 구성도 달라서 한편 기대도 되고 또 한편으로는 배역 교체가 많아 좀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얼마전 허리 수술을 받았다는 노 거장 레바인의 지휘 아래 멋진 공연이 펼쳐졌다. 호프만역이 테너들에게 엄청난 도전이 되는 어려운 역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유를 알겠다. 노래 실력은 기본이고, 순수 공연만 세시간이 족히 되어 보이는 긴 오페라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섯 장면에 모두 등장하며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하는 역할이니 웬만한 체력으로는 버티기도 힘들겠다.
(메트 한국 사이트에 올라온 배역들)
Olympia : Kathleen Kim Antonia : Anna Netrebko Giulietta : Ekaterina Gubanova
Nicklausse/The Muse : Elina Garanca Hoffmann : Rolando Villazon Four vilians : Rene Pape
(실제 공연때 배역들)
Olympia : Kathleen Kim Antonia : Anna Netrebko Giulietta : Ekaterina Gubanova
Nicklausse/The Muse : Kate Lindsey Hoffmann : Joseph Calleja Four vilians : Alan Held
<호프만의 이야기>도 오펜바흐가 완성을 못하고 남겨진 것이라 공연마다 많은 부분 다르다고 했는데, 다른 영상물을 보고 리브레토도 이미 읽어 보았지만 역시 많이 다르다. 전체 흐름과 노래에 큰 차이는 없지만, 부분 부분 나름의 연출로 흥미를 끌고 어떤 부분을 어떻게 진행할지 궁금증에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특히, 뮤즈이며 친구인 니클라우스의 역할이 상당히 재미있게 연출되었고 역을 맡은 케이트 린지의 연기나 노래도 상당히 좋았다. 도대체 호프만의 친구인지 악당들의 친구인지 헷갈리게 하는 야릇한 연출도 재미있고, 아름다운 뮤즈와 니클라우스역을 모두 잘 소화한데는 그녀의 중성적인 외모도 한몫 하는 것 같다. 상당히 매력있는 얼굴이다.
위에 나열한대로 배역진이 최종적으로 많이 다르다. 안나 네트렙코가 원래는 세 여주인공을 모두 하겠다고 했으니 결국 안토니아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뀐 샘이구만. 네트렙코가 생각은 바꾼건 아주 잘한 것 같다. 사실 어두운 캐릭터인 안토니아를 맡기에도 이미 그녀 목소리는 너무 탁하다. 올랭피아나 줄리에타를 그녀가 불렀다면 야유가 쏟아졌을지도 모를일. 엄청난 화질의 대형 화면 앞에 그녀의 거칠고 나이든 피부와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이제 비주얼도 안먹히겠는데... 단 하나, 역할에 대한 몰입과 관객 흡인력이라 할까 그것만은 여전히 대단하다. 노래 한마디 없는 스텔라역으로 처음과 끝에 잠깐 다시 등장하긴 하지만 안토니아 역 만으로도 오페라 전체를 감싸는 네트렙코의 존재감이 단지 연출의 힘 만은 아닐 것이다.
올랭피아역의 한국계 Kathleen Kim의 노래도 좋았다. 아직 조금씩 서투른 면은 있지만 그 작고 귀여운 몸에서 솟는 맑고 투명한 고음의 콜로라투라는 무대와 객석을 모두 휘어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커튼콜에서의 그녀를 향한 함성이 대단하다.
그녀만을 풀샷으로 잡았을때 역시 동양인의 짧은 다리는 어쩔 수 없구나 했는데, 다른 사람과 같이 서니 마치 진짜 인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은 키에 조그만 몸매다. 1막의 끝부분에 호프만과 올랭피아의 과속(?) 댄스 장면이 있는데, 저 엄청난 키 차이를 어쩌나 했더니 역시나 호프만이 그녀를 번쩍 들고 나간다 ^^
네트렙코가 노래 잘한다는 생각이 든적이 한번도 없어놔서 그녀의 노래는 별 할 말이 없다. 미라클 박사의 꼬드김에 결국 안토니아가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열정을 노래로 토해내다 쓰러지는 장면에서 그녀의 연기 몰입에 노련함이 느껴지는 정도..
네 악당을 모두 소화한 Alan Held는 연기도 노래도 자연스럽다. 대단하다고 할 만큼 내게 매력적인 인상은 주지 못했지만 좋았다. 줄리에타역의 구바노바는 모르겠다. 사실 역할에 어울리는 외모도 아니고 연기도 전혀 영혼을 바칠만한 치명적 유혹이 되지 못한다 ㅋㅋ. 유명한 호프만의 뱃노래는 뭐 그럭저럭...
우리의 주인공 호프만. Joseph Calleja는 몰타 출신이란다. 사진에서 언뜻 보면 원래 호프만을 부르기로 한 비야손과도 살짝 비슷한 느낌을 준다. 물론 실제 무대에서는 전혀 다르다. 너무 부드럽다. 아니 아직 역할 자체에 완전히 녹아들지를 못했다. 불러야 할 노래를 모두 제대로 불러내야한다는 부담감에 자연스런 연기와 몰입까지는 아직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목소리도 좋고 노래도 잘하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메트 홈페이지에 Rising Tenor라 소개하는데, 적절한 표현이다.
이 오페라를 끝까지 시원하게 불러준다. 마지막까지도 지쳐 보이는 기색이 전혀 없다. 왕체력 젊은이.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칼레야의 목소리가 중간 중간 좀 탁해질 때가 있다. 특히 2막에서 네트렙코와의 듀엣에서는 깜짝 놀랄만큼 전혀 다른 탁하고 거친 목소리로 들려서 좀 의아했는데, 3막의 끝에서도 또 그랬다. 어째 음색이 왔다 갔다 하는지 ... 내 귀가 왔다 갔다 하는건가..
시중에서 롤란도 비야손의 호프만을 본 적이 없는데 그가 이번에 불러줬다면 정말 더없이 좋았을텐데 조금 아쉽다. 하지만, 컨디션 안좋은 상태에서 억지로 불러서 실망만 안겨주는 것 보다는 차라리 그의 멋진 호프만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이 더 났다.
연출을 맡은 Bartlett Sher 는 뮤지컬 남태평양으로 토니상을 받았다는데, 나름 관객에게 친절한 연출을 한 것 같다. 등장인물도 많고 장면도 많은 이 복잡한 오페라를 전체적으로 적절히 잘 설명해준다. 프롤로그의 끝에서 시작되는 호프만의 세 여인과의 사랑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꿈결처럼 다시 처음과 같은 장면의 술집으로 이어지면서 에필로그가 마무리되는데, 마치 영화에서 주인공의 이야기속으로 자연스레 장면이 전환되었다가 다시 회상장면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매끄럽게 연출되어 있고, 누구나 그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호프만의 이야기속 서로다른 세 여자가 결국은 현실(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의 스텔라 한 사람의 서로 다른 측면을 얘기하는 것처럼 코펠리우스, 미라클, 다페르투토 세 악당은 결국 린도르프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
3막 줄리에타 이야기에서는 이상하게 전체적으로 어수선하고 각 배역의 동작이나 장면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줄리에타가 전혀 요염하지 못해서 나만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지만...
닐 쉬코프와 브린 터펠의 호프만 영상을 얼른 봐야겠다. 모든면에서 또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에서 호프만이 공연되는 2월이면 카르멘 공연이 있을 때여서인지, 카르멘 공연의 두 남자 주인공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로베르토 알라냐의 호세역은 내게는 전혀 흥미가 안생긴다. 그보다는 카르멘에 앞서 공연된 <장미의 기사>가 기대된다. 이건 3월에 메가박스에서 볼 수 있다. 르네 플레밍의 백작부인역이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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