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소설일까/오페라 공연

2010 Met HD Live - 투란도트

알리스슈바 2010. 1. 14. 10:21

지난 2009년 가을부터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1달에 몇번씩 뉴욕 메트 오페라 HD 실황을 한달 늦게 상영하고 있다. 예전에 했던 오페라 공연을 두편 하고나서 본격적으로 2009~2010시즌의 오페라를 하고 있는데, 지금껏 그리 흥미로운 공연이 없어 패스하다가 이번 '투란도트'는 미리부터 점찍어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공연 '호프만 이야기'도 처음 기획 그대로였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암튼 기대하고 있다.

 

이번 '투란도트' 공연은 일단 마리아 굴레기나가 투란도트역을 맡는다기에 관심이 생겼다. 제페렐리의 유명한 연출도 물론 DVD로 나와있기도 하지만 큰 화면으로 보면 더욱 좋으리란 기대도 있었다. 작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처음 본 마리나 포플라프스카야가 류를 맡는다는 것도 맘에 들었고. 다만, 칼라프역의 마르첼로 조르다니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바가 없다. 하지만 굴레기나와 포플라프스카야라면 최소한 날 실망시키지는 않을거니까 ^^

 

지휘자 Andris Nelsons. 무척이나 젊은 지휘자이다. 메트에 데뷔한지 2주째란다. 젊은 지휘자라 예상대로 템포가 좀 빠르다. 실황 공연의 1막은 청중도 그렇고 무대 위의 성악가들이나 모두 좀 어수선한 경우가 많은데 이번도 1막은 상당히 미숙한 느낌이다. 새뮤얼 래미의 티무르역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나이들어도 그 멋진 목소리는 여전하다. 아직 1막이어서 섣부른 판단은 안되겠지만 칼라프의 목소리나 노래가 상당히 괜찮다. 힘빠지지 않고 이대로 가주면 멋진 공연이 될 수 있겠다 ^^ 물론, 류는 잘 부르지만, 지휘자님이 너무 급하게 가시는지 1막의 아름다운 아리아 'Sinore, Ascolta' 가 호흡이 살짝 이상하게 들린다.

제페렐리의 화려한 무대라고는 하지만, 1막은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 서양사람이 표현한 동양의 이미지라는게 동양인 시각에서 보면 웃길 수 밖에 없겠지만, 중국도 일본도 아닌 이상한 느낌에다 처형 장면에 축제용 사자춤도 그렇고 ... 그냥 넘어가자.

 

2막 핑,팡,퐁 장면. 핑역의 바리톤. 이름은 모르겠지만 목소리도 멋지고 안정감 있고, 노래도 잘한다. 오네긴에 딱 어울리는 목소리.

드디어 투란도트 등장. 시작부터 좌중을 압도해야하는 막중한 책임의 아리아 'In questa reggia' 멋지게 불러준다. 역시 굴레기나. 지금 이 시대에 그녀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멋지게 이 아리아를 불러줄 수 있을까. 류를 부를 사람은 많아도 투란도트는 아무나 부르기 힘든다. 이 아리아는 끝나면 바로 수수께끼 풀이로 넘어가야해서 박수를 칠 타이밍이 없다. 수수께끼 풀이 장면도 투란도트와 칼라프 모두 연기도 자연스럽고 목소리도 좋다. 사실 칼라프역의 마르첼로 조르다니 목소리가 고음에서는 나쁘지 않으나 저음이 이상하다. 듣기 좀 거슬기리도 하고 뭔가 쇳소리 같은것이 난다. 그것만 아니면 정말 이 시대 최고의 칼라프라 할 만하구만.

 

3막 칼라프의 최대 도전 'Nessun Dorma' 이다. 오웃 잘한다. 이 아리아도 사실 박수칠 타이밍이 없음에도 메트의 객석에서 모두 일제히 박수가 터져나오니 젊은 지휘자님 잠시 오케스트라 연주를 멈췄다.

이제 하이라이트라 해야하나 드디어 류가 잡혀와 고문당하는 장면. 1막에서의 류의 아리아는 살짝 느낌이 부족했는데, 여기서는 기대 이상이다. 정말 잘한다. 인터미션때 어떤 역이라도 준비되어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던데, 그런 자신감 있을만 하다. 떠오르는 신예 스타. 심한 사각턱에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나름 개성있고, 무엇보다 그녀 세종문화회관에서 봤을 때 큰 키에 성량이 엄청나고 시원시원해서 지금도 잘 하지만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류의 죽음 후 티무르의 조용한 절규. 역시 새뮤얼 래미. 이 오페라 전체의 어르신임을 확실히 보여주신다.

이 오페라가 정말 멋지지만 하나 아쉬운 것이 류의 죽음 이후 푸치니가 끝을 맺지 못한 미완성작이란 것이다. 사실 미완성임에도 오늘날 가장 인기있는 오페라 중 하나인것을 보면 얼마나 이 오페라가 멋진 것인지를 역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해야 맞겠다.

암튼, 류가 죽은 후의 전개는 그냥 적당히 결말을 내는 것 이상의 느낌은 못받았는데, 이 실황에서 처음으로 류의 죽음 이후에도 흠뻑 빠져서 보게 되었다. 젊은 지휘자님의 틈을 안주는 전개 방식이 여기서는 내맘에 들었다. 류의 희생에 충격받은 투란도트와 그 고통에도 더욱 절절한 칼라프의 구애(?)가 빠르게 진행되고, 둘의 연기도 자연스럽다.

막판까지도 소리를 질러야하는 투란도트와 칼라프. 둘 다 힘 빠져서 고음이 끝까지 안올라가지만 그래도 좋다.

 

어렵게 시간내서 본 것인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다. 관심있는 사람이면 꼭 보라고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