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반지는 그만 보려고 했는데, 다른 오페라들이 잘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나도모르게 또 반지를 집어왔다.
이번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버전. Hartmut Haenchen 지휘.
<라인의 황금>은 일본만화같은 의상과 재미없는 구조물 몇개로 이루어진 엉성한 무대 세트 때문에 음악은 귀에 별로 들어오지도 않는다. 어쨌거나 잘(?) 차려입은 신들에 비해 난쟁이족과 거인족은 매우 추한 모습이다.
<발퀴레>는 무대 구성이 좀 독특하다. 오케스트라는 무대와 거의 같은 높이로 무대 가운데 있고, 오케스트라 피트 주위로 빙 둘러 만든 무대는 바로 관객과 코앞에서 마주하는 구조이다. 노래하는 사람들이 지휘자와 눈을 맞추기가 거의 어려운 위치에서 바로 관객과 마주하며 연기해야 하는데, 그들의 연습량을 짐작 가능하다^^ 지휘자를 보느라 연기중에 곁눈질하는 모습을 안봐도 되는 것도 좋다~ 물론 관객석쪽 적당한 위치에 지휘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니터가 있겠지만.
보면 볼 수록 <발퀴레>는 음악 자체로 너무 좋은 부분과 말도 못하게 지루한 부분의 공존으로인해 건너뛰기가 필수다. 건너뛰기 1순위는 보탄이 브륀힐데에게 지난 얘기하며 신세한탄 늘어놓는 장면. 프리카와 보탄의 부부싸움, 보탄이 브륀힐데 벌주는 장면, 지크문트가 지난얘기하는 장면도 좀 지루하지만 주연들의 호흡과 역량에 따라 집중력있게 진행되는 경우도 많은데, 보탄의 신세한탄 장면은 정말 내겐 넘사벽.
바렌보임판에서 지클린데로 나왔던 Nadine Secunde를 다시 보게되고, 불레즈판의 지클린데와 구트루네였던 Jeannine Altmeyer를 20년 후에 여기서 브륀힐데로 보게 된다.
<지크프리트>는 주인공이 분장 뿐만 아니라 외모도 동양인 같아서 진짜 일본 사무라이 같은 느낌... 좀 거부감 드는 것이 사실이다. 레치타티보 정도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지크프리트가 너무 연극 대사 하듯이 해서 조금 신기하다 했는데, 북클릿을 읽어보니 아마도 의도된 것이었던 듯하다. 목소리에 너무 힘이 없지 않나 했는데, 막상 힘차게 뻗어 주어야 할 부분에서는 전혀 지친기색도 밀리는 기색도 없이 시원하게 잘 불러준다. 노퉁 만드는 장면도 멋지고, 브륀힐데와의 마지막 장면도 좋다. 알트마이어는 목소리는 힘차고 좋지만 딕션이 좀 불투명해서 살짝 아쉽다. 대체로 만족스러움.
최근 본 대부분의 반지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부분은 역시 <신들의 황혼>이었는데, 암스테르담의 것은 영~ 시원찮다. 무대 연출도 엉성하고, 연기들도 노래도 뭔가 조금씩 부족하고, 오케스트라도 연주 자체보다는 뭔가 윤기가 빠진 느낌이다.
반지의 네편이 하나의 세트라고는 하지만, 각각 특성이 많이 다르고, 중심 인물도 다르니, 같은 지휘자,연출에 한번에 올리는 공연이라 해도 네편이 각각 다를 수 밖에 없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게 마련인 것 같다. 암스테르담판은 <발퀴레>와 <지크프리트>만 대충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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